++ 동북노회를 방문하신 여러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칼 럼 | 이야기


 세상에 대한 배신

2017-03-17 23:29:58, Hit : 1431

 



세상에 대한 배신

   ‘배신’의 의미가 무엇인가? ‘배신’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심대한 불이익과 고통과 명예와 인격을 손상시키는 것이지, 진실을 말하여 억울한 사람의 결백함과 그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을 ‘배신’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배신’을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
  <가룟> 유다의 배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삼년이나 따라 다니며 재정을 관리했던 그는 어느 다른 제자들 보다 돈의 유혹을 많이 받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할 때, 유혹하고 이간 질하고, 파멸하게 만드는 사탄이 그 사람의 가장 약한 곳에 치고 들어간다. 물질 때문에, 자신의 유익 때문에,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배신을 하게 되었다. 그의 배신의 결과는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뉘우쳐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던 은 삼십을 도로 갖다 주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베드로>의 배신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베드로가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 하셨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삼년을 따라 다녔던 베드로도 아직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자신의 생명이라는 유익을 완전히 포기할 만큼의 믿음의 확신이 서 있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붙잡히신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실 때, 그는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회개하는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그를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신 것이다. 다음은, <사울>의 배신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사울이 바울이 되어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는 것을 보고 그 소문을 듣게 된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사울의 엄청난 배신으로 인한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가룟 유다와 베드로와 사울의 배신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사울이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에 대한 배신은 지금까지의 배신과는 전혀 다른 배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의 배신이 자신의 유익을 위한 배신,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었다면 사울의 배신은 세상에 대한 배신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반드시 세상이 당신을 미워하고 핍박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사울은 세상을 배신한 바울이 되었기에 세상은 극도의 분노를 품으며 그를 죽이려고 의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세상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 요구된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지키기 위한 세상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친구, 동료, 선후배, 일가친척을 배신했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적인 평가, ‘철저한 예수쟁이‘가 되고 있는가? 그로인한 손해, 이상하게 바라보는 자존심의 침해, 여기에 대하여 세상이 당신을 향한 편견들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지금 당신 안에 예수가 계시게 하셔서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시고, 나의 최종적인 위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신실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대한 철저한 배신”이 있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자가 그리 많지 않다. 먼저는 세상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배신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주님과 연합하여 화평을 누리며 천국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들의 깨달음은, 환난이 닥쳤기에 더 가깝게 주님을 대할 수 있었고, 환난이 있었기에 비로소 사람은 주님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을 하며, 환난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가졌던 나의 방식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가난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힘과 나의 지식으로는 해결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여 비로소 진지하게 주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이 꿇어집니다.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멀리 계셨던 주님을 불러보게 된다. 이 작업이 바로 “세상에 대한 배신”이다.
-오영관 목사-


  KPAD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여 훌륭한 전도와 선교의 도구로 쓰임빋기를 기도 합니다



25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면 --" 
 오영관
205 2018/08/20
24
  "아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오영관
115 2018/08/17
23
  "하나 -- 가지 않겠노라." 
 오영관
127 2018/08/08
22
  정금이 되는 싸움 
 오영관
131 2018/08/02
21
  “가치 혼돈의 시대 - 시대의 아픔을 넘어” 
 오영관
130 2018/07/29
20
  하나님의 뜻 
 오영관
143 2018/07/29
  세상에 대한 배신 
 KPAD
1431 2017/03/17
18
  기다림과 순종 
 KPAD
3241 2013/12/28
17
  여쭈어 보십시다 
 KPAD
3057 2013/12/28
16
  믿음과 지도자 
 KPAD
3153 2013/12/05
15
   하나님 나라 
 KPAD
2799 2013/12/05
14
  새로운 가치 
 KPAD
2203 2013/11/25
13
  잘못된 마무리 
 KPAD
2356 2013/11/24
12
  교회정치의 바람 
 KPAD
2271 2013/11/24
11
  잃은 드라크마 
 KPAD
3653 2011/10/20
10
  "문화의 장벽" 
 오영관
3391 2011/07/04
9
  “방법의 차이점” 
 오영관
3444 2011/06/12
8
  "다름의 차이" 
 오영관
3600 2011/04/11
7
  화평과 양보 
 오영관
3216 2011/04/01
6
  나눔과 섬김으로 
 오영관
3029 2011/01/25

1 [2]



해외한인장로회 동북노회 Copyright © 2005 - 2018 KPCA-NE.org Allright Reserved.
The North - East Presbyter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Abroad
21-70 Hazen St., E. Elmhurst, NY 11370  TEL 917-828-0931(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