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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 이야기


 아픔이 변하여

2011-01-04 17:53:02, Hit : 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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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이 변하여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이 있을 수 있다. 아픔이 있기에 인간이다.
아픔이 있을 때 아픔을 축복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픔 속에 묻어 나오는 나의 약함과 나의 불행이 오히려 거북하고 불편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그 고난의 때를 다른 사람들과 아름답고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가는 기회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보다 유능하고 더 나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자랑하고 뽐내면 그의 영향력과 잘남을 인정하기 보다는 견제하고 넘어뜨리려고 한다. 요즘 지인들 앞에서 자랑을 하려면 자랑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밥값을 내게 한다. 잘 낫다고 자랑하면 저항이 생기고 경쟁심이 생기지만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내어 놓고 나누면 공감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여기에 지혜라고 생각하지만 지혜가 아닌 방법이 있다. 수박 밭에 도적이 밤마다 수박을 도적질 해 갔다. 참다못해 주인은 화가 났다. 수박 한 통에 농약을 주사하고 경고문을 붙였다. “수박 밭 수박 한 통에 농약을 주사하였음. 주인 백“ 일주일 후 또 하나의 경고문이 붙었다. 도적이 써 놓은 경고문이었다. “이 수박 밭에 수박 두 통에 농약이 있음. 한 통은 주인이 알고 한 통은 도적이 안다.” 악은 악으로 못 이긴다. 세상은 더욱 악해진다. 농사를 지어 결실의 때에 도적질을 당한 주인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다. 얼마나 쓰라린 아픔인가? 자신이 당한 아픔에 그 아픔만큼 상대방에게 갚아 주려 할 때에 해결은 있을 수 없다. 아픔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기에 인생은 그 아픔에 신음하며 아픔을 호소한다.

아픔은 고통이지 축복이 아니다. 그러나 아픔을 잘 관리한다면 얼마든지 “아픔이 변하여”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해 한 달 동안 환자 때문에 두 번이나 응급실에 갔다. 많이도 아픔을 호소했다. 조금이라도 환자의 고통을 없애 주고자 진통제를 주사하고 약을 먹게 했다. 아픔을 당하는 사람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힘들게 한다. 우리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며 당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분의 아내가 환자였다. 이 환자는 당뇨합병증을 가지고 있어 다리에 감각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부엌에서 조리를 할 때 뜨거운 것이 접촉되거나 떨어져도, 살점이 떨어져도, 통증이 없으니까 상처를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발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당장 치료를 하지 못하니까 상처가 덧나고 병의 특성상 잘 아물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안타깝고 쓰라린 마음을 가지며 뒷수습을 하며 살아야 하는 그 분의 아픔을 생각해 보았다. 화상을 입고, 찔리고, 베여서 살점이 떨어져도 감각이 둔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했다.

진실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축복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상태가 축복이 될 수도 있구나! 자신의 몸이 아픔을 느낀다는 자체가 아직은 나의 몸이 건강하다는 신호이고, 주변의 어려움을 보고 마음이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이 건강하다는 축복이다. 만약 화인 맞은 영혼이라면 어떻게 남의 아픔과 불행을 보고 같이 아파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있기에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신음을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콘트롤이 되지 않는 극한 고통도 있지만 웬만하면 약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방법이 없다. 아픔은 축복은 아니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비교할 때 복된 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위로 받고 치유의 소망을 가져본다. 이 소망 속에서 “아픔이 변하여” 새로운 영혼의 소망을 가지고 이웃의 아픔을 알아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나눔의 행복이 있었으면 한다.


샬롬.




  오영관
한마음장로교회 오영관 목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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