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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나의 즐거움 - 오영관 목사

2006-11-15 00:25:19, Hit : 3681

 

"믿음은 나의 즐거움“ (합3:17-19)               07/02/06 (주일)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 ”하나님, 하필이면 왜 그렇게 역사하십니까?“ , ”하나님, 왜 그런 사람들을 쓰십니까?“ 어느 시대를 살던 고통과 고난이 없는 시대는 없다. 인간은 여기에 대한 이유와 해답을 찾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 왔다. 오늘의 본문인 하박국서는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세상을 바르게 통치하시는가? 라는 하나님의 섭리와 일 하심에 의문을 가진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엄청난 갈등이 생기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 바로 위의 세 가지 질문이다.
월드컵 한국축구 대표 팀의 감독이었던 ‘아드포카드’ 는 앞으로 축구 감독의 길을 걸어갈 사람에게 이런 말을했다. “팀이 시합에서 지는 것을 겁내는 사람은 감독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감독은 시합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시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믿었던 선수가 부진할 때, 잘하는 선수가 부상을 당하여 뛰지 못할 때, PK으로 승부차기 할 때의 피 말리는 순간들, 성적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 그에 대한 support group과 언론의 비난 등,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숨 막히는 고통,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엄연한 현실로서 감독으로서는 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도의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들의 삶 자체도 세상이란 공동체에 살아가기에 모두가 비슷한 여건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부조리가 있고, 억울함이 있고, 분노함이 있고, 파렴치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상식을 깨는 아픔이 있고, 상상을 초월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절박함이 있게 마련이다.

성도여러분!
인간의 지식으로는 해답이 없다. 그 답은 정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해결되어져야 한다. 합2:4b에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에 나오는 의인은 믿음의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인내를 가진다. 그 인내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해 일하시며, 그 백성을 잊지 않고 계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 분의 날에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을 알 수가 없다. 오직 그 날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기에 거기에 믿음이 필요하게된다.
고로, 믿음은 소망을 가지게 되며 믿음으로 소망을 바라보게 될 때 “믿음은 나의 즐거움”이 된다.

‘즐긴다‘는 것에 매우 깊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 “믿음은 나의 즐거움” 즉, 그것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즐거움이 나의 삶을 지배하며 붙잡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BC 600여년 전에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이 죽게 된다. 그 왕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왕이었다.

요시야는 현명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으로서 종교개혁과 함께 사회개혁을 하였던 왕이었는데 갑자기 죽자 유다 사회는 국가적인 혼란과 도덕적인 부패 종교적인 타락이 일어난다.
백성들은 악해지고 곳곳에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망국적인 행위가 일어난다. 의로운 사람이 핍박당하고 악인들이 득세하고 잘못된 것이 정의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간다. 이러한 위기의 유다에 하나님께서는 한사람의 선지자를 세우신다. 그는 민족의 운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가 바로 하박국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싶어 기도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는 이 말씀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8)

성도여러분! “믿음은 나의 즐거움” 이 말씀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1> 영원한 것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야 한다. : 딤후4:10(주후66)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
여기에 ‘데마’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는 몬1:24(주후61년)에서 한 때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그를 위해 봉사와 수고를 하였으나 결국 세상을 사랑하여 신앙을 포기한 채 그를두고 자기의 갈 길로 떠나 버렸다. 성도여러분! 데마는 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과 자신을 위해 떠난 사람을 말씀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데마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를 섬기면서도 세상 복만 받을려고 하는 한 거기에는 만족함이 있을 수 없다. 즐거움이 없다. 어떤 목사님 개척하여 15년 이상이 지났지만 언제나 교인은 20-30여명 정도이다.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는 성도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왜냐? 우리는 왜 부흥이 않되느냐? 목사님이 능력이 없다는 것
이다.
목사님은 성도들을 올바로 가르쳐 귀한 일꾼들로 만들려고 참으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성도들은 잘 나오지도, 잘 따르지도 않고서 나중에는 몽땅 목사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어찌했던 목사님은 “다 내 탓이요.“하고 생각한다. 목사님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 동안 여러 차례 훨씬 큰 교회좋은 조건의 교회를 마다하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지금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기에 데마가 볼 때 소망이 없어 보여 떠나는 것이다. 성도들 떠나면서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교회와 목회자를 비난하며 떠나간다. 남아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주고 떠나간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복은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요즘 인사가 “부자 되세요!”이지만 아무나 부자 되나요? 그리고 부자가 그리 좋은 것도 못된다. 복권 당첨자가 행복한 시간은 5년뿐이다.
그 이후에는 다시 당첨 전의 심리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여분의 돈이 더 있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와같이 소득과 환경은 행복을 유발하는 요인 중 10%에 불과하다는 영국의 BBC에서 스폰서한 <슬라우> 연구 결과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조건에서도 영원한 것에 맞추고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문제는 뭐냐? 사람들은 그렇게는 하고는 싶은데 안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안된다. 두드리고, 매달리고, 졸라야 한다. 그 때 은혜주시고, 능력 주셔서 “믿음은 나의 즐거움”이 되는 귀한 축복의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 있게 될 줄 믿습니다.

<2> 생활과 복음을 분리시키지 말라. : 이민 1세가 주류 사회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
내고 성공하는 케이스는 굉장히 어렵고 간혹, 있지만 그 분의 노력과 열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포사회에서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사회에서 돈 좀 모았다고, 좋은 차 탄다고, 좋은 집에 산다고 해서 별로 알아주는 유명세가 없다. 자랑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목사님이 고난주간에 몰래 골프장가서 우연히도 홀인원 하고서 그 기쁨을 자랑하기는 해야 하는데 끙끙 앓으며 못 했던 어떤 미국 목사님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민교회의 특성상 모든 면에서 장로의 자격이 모자라는데 장로가 되신 분이 간혹있다. 많은 교인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성찬예식에 분병 분즙 할 수 있고, 주일 예배에 회중 앞에서 대표기도 할 수 있고, 교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당회에 참석 할 수 있는 외형만 바라보며 그것을 하나의 신분 상승의 모습으로만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의 희생을 참뜻을 알지 못하는 그 분들, 여기에서 생활과 복음이 분리되는 생활을 보면서 모든 책임은 가르치지 않고 임직시켰던 목회자의 몫이 아닌가 깊이 회개해야 한다. 한편, 교인들 중에는 신령한 것만 찾아서 자신의 삶과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등한시 하는 분들을 간혹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천국의 일등 백성과 함께 세상의 일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전14:12에서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하였다. 영적은사는 자신의 개인적 은사보다는 다른 사람을 감동 감화시키는 남을 위한 사랑의 은사가 더 낫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도여러분! 신령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남을 배려하는 풍성하고 깊은 사랑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때 보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며 그 분의 힘을 빌어, 은혜 안에 빠져, 주와 하나가 되어, 주의 사랑을 나누며, 주신 깊은 은혜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므로 거기에서“믿음은 나의 즐거움”이 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3> 받은 복을 소유보다는 누릴 줄 알아야 한다. :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세요?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그 청년이 부자이며 유명하기에 모두 다 알고 싶어 한다. 예수께서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나누라’는 축복의 말씀을 ‘버리라’는 저주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성도여러분! 믿음 안에 있지 않을 때의 ‘나눔’은 가장 하기 싫고, 듣기 싫은 말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영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세상의 복을 거부 하지 못하고 있다. 영적인 것의 본체는 그 사람의 생활에 복음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습관화, 체질화되면 주변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청년은 지금까지 율법적, 도덕적 삶을 살아왔지 결코 복음적 삶을 살아 온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살아 왔다. 다행히 예수님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는 좋은 기회가 찾아 왔지만 아깝게도 복음을 놓치면서 믿음 안에 있는 ‘누림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만다.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답답하여 ‘도대체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현실만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인색함을 나타낸다. 이 세상에 불만이 있나요? 그러나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의인이라면 믿음으로 살아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바로 현재까지 주신 복을 감사하며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삶 속에 큰 능력이 나온다. 주어진 복을 기쁨으로 누리기에 따라 커질 수도, 작아 질 수도, 없어 질수도, 있게 된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믿음은 나의 즐거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뉴욕예은교회 오영관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


  KPAD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여 훌륭한 전도와 선교의 도구로 쓰임빋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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