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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해야 할 이유- 오영관 목사

2011-11-22 02:34:06, Hit : 3222

 

몇 달 전 Wall Street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서 시작한 시위(demonstration)는 미국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세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 사람들, 실직한 사람들이 Job을 달라는 이유 있는 아우성입니다. 월가의 증권가에 있는 사람들이 욕심과 불건전한 방법으로 돈되는상품이라면 엄청난 금액을 무분별하게 투자하여 자신들만 상상을 초월하는 수입을 챙기고, 실패하면 정부에 구제지원을 받아  결국 그 책임을 세금을 내는 일반국민에게 떠넘기는 방법으로 하여 지금 미국의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직장이 없어지고 젊은이들이 실업자가 되는 불행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없고 오직 자기 것만 지키려는 이기적인 탐욕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실업자들은 지금의 현실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에 분노만 남아있습니다. 돈 있고 욕심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돈 버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긴장과 이기심만 있지 감사가 없습니다. 한편 고생을 하며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또한 불평과 원망과 분노만 있지 감사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이 사람들에게 감사를 이야기 한다면 무슨 반응이 있겠습니까? 감사할 조건이 되겠습니까?


  1981 년 흑인으로 130세 장수기록을 가진 Charles Smith 씨가 Florida <바토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의 인생 130 년 세월은 하나하나가 끊임없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노예 신분인 부모에게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동적으로 아기 때부터 노예가 되었습니다. 주인의 천대(contemptuous)와 멸시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남부로, 서부로 팔려 다니며 매를 맞고, 숱한 모욕을 당하고, 굶주리며, 병들고 죽을 고비를 20번 이상 넘기며 살아갔습니다. 한 때는 서부 최고의 총잡이 <제시 제임스>의 마굿간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Smith 씨는 죽기 며칠 전 그를 방문한 <스티븐슨> 목사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흑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노예 신분이었음을 감사합니다. 매 맞고 모욕당한 것도 감사합니다. 고통스런 노동생활 했던 것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130 년간 언제나 제 곁에 계셔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노인의 기도를 들은 <스티븐슨> 목사님은 위로하러 왔다가 오히려 큰 위로를 받고 돌아오며 “이런 신앙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 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추위에 떨던 사람은 따뜻한 방의 고마움을 더 많이 느끼듯, 고통스런 나날을 보낸 그였기에 평화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것을 바라보았을 때 더욱 더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감사의 조건을 찾습니까? 그 조건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 9 : 33 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위의 말씀에서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인생을 돌아다보면 많은 ’희노애락‘(joy/anger/sorrow/pleasure)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할 최고의 역사적 감동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곧 예수를 만나게 된 신앙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우리가 만난 예수는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고난과 시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 자는 고난과 시련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아니 반드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 세상의 어떤 부귀나 영화, 권세를 약속하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감사는 물질이 바탕이 되고, 세상이 좋아하는 세속적인 감사가 아니라 내가 예수와 함께 동행 하고 있고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신앙적인 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가슴 아파해야 했고 괴로움과 탄식 속에 수많은 밤을 지새웠던 그 일로 인하여 오히려 찬양하고 감사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 어디를 가나 마치 치열한 전쟁터를 생각하게 합니다. 무서운 도전과 생존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님들에게는 이 보다도 더 무섭고 힘든 원수 마귀와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유일한 공격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곧 원망과 불평입니다. 창세기에서 이미 뱀의 탈을 쓴 마귀는 에덴동산에 들어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감사대신 우리의 마음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면, 마귀가 우리마음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살전 5 : 16-18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단 마귀는 항상 기뻐하는 성도의 마음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유혹의 그물을 치지 못합니다. 특별히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에게는 패배를 안겨다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뻐하는 것, 감사하는 것,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감사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도하며 회개할 때 감사기도를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는 회개를 잘 하지 않고 다른 기도만 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감사가 반드시 포함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진정으로 감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에 도전받지 못한다면 복음의 핵심인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입술에서 감사가 나오지 않고 그 감사가 주는 유익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참 좋으신 예수를 믿고 나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물질과 명예와 성공과 또는 경쟁에서 이기자. 아직도 이런 세상적인 기준으로서 신앙을 자꾸 점검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이 아니고는 감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눅 17 : 12-19 에 나오는 10 명의 문둥이들 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 예수님께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나머지 아홉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감사표시를 못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문둥이 사건을 통해서 십의 일조만 감사하며 영혼과 육체가 고침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감사할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생활을 할 만큼 수입이 있었다는 감사, 일할 만큼 건강했다.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직장을 가졌다. 가정이 평안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올해 얼마나 shopping을 해서 옷과 먹을 음식, 기호품, 편의용품, 의료품, 가구, 전자제품 등을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가? 수입이 있었고 믿음이 있어서 얼마나 하나님께 바쳤나? 얼마나 남을 위해 주었고, 헌신했는가? 여기에 대한 감사는 있었는가?
  내가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고,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 있고, 바칠 수 있고, 줄 수 있는 것, 건강해서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얼마나 감사했는가? 얼마나 하나님 뜻대로 살았는가? 혹시 그렇게 못하고 살았다면 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영혼의 깊은 곳에서 쏟아나는 감사하는 복된 시간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3 절을 보시면, 말씀이 주시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나옵니다. 1)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2)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3) 우리가 그의 것이기 때문에, 4) 우리가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5)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볼 때 우리에게는 감사할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됨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롬 8 : 35 에 보시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 요 17 : 15 에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렇게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보호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귀의 공격으로 영혼들이 크게 부상을 입고 어려움을 겪고 영원히 죽게 될 운명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분의 보혈로 우리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무한한 기쁨을 누리며 영광 중에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됨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본문 4 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1)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근원이 마음입니다.
죄짓는 근원도 마음이고, 감사도 마음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당신은 마음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고통과 후회입니까? 아니면 복음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당신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2) 몸을 바쳐 감사해야 합니다. 빌 1 : 21에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려면 자신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잘 낫다고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면, 주님께서는 가만히 계십니다. 오래 전에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며 건지러 간 사람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힘이 빠져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건지러 간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향하여 펀치를 한방 날려 실신시키고 물에서 건져내는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죽지 않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이 살겠다고 하면 그때는 아우성만 나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어지고 예수님만 살아 계신다면, 그때 는 감사가 나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몸 바쳐 감사하는 것입니다. 3) 찬송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오면 순서에 따라 찬송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찬송을 하는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부르는 찬양에 은혜와 감동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천국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을 만납니다. 때로는 기쁨의 뜨거운 눈물이 있습니다. 찬양은 모두가 노래로 부를 수는 있어도 찬송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타납니다. 당신은 부르는 찬양에 가사와 악보만 보입니까? 아니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찬양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불신앙에는 찬양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불신앙의 아무나가 아니라 진정한 찬양을 하시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원합니다. 지나온 1 년, 성도님들 이민의 땅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으신 줄 압니다.
때로는 실망, 좌절, 아픔, 분노와 억울함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낙심과 좌절과 포기와 절망하지 않고 주 안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여기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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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잘 사용하여 훌륭한 전도와 선교의 도구로 쓰임빋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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